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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연소영

학력
홍익대일반대학원 회화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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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연소영

학력
홍익대일반대학원 회화과 재학
큐레토리얼 에세이
-당신을 위한-

위로는 어렵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상처는 쉽고 위로는 어렵다.

상처, 슬픔, 상실, 우울과 같은 감정은 사회 안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된다. 바람직하지 못하게 된 이러한 감정은, 아무도 그대로 두지 못한다. 이러한 감정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사회에 속하기 위해, 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상처와 슬픔, 상실과 우울에 빠져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사회를 위한 실용, 효율, 생산성은 이러한 감정이 포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논리와 기능은 그 안에 멈추어 있다. 사회는, 이것을 승화할 때 가능하다. 사회와의 타협과 수용을 위해 위로는 존재한다. 위로가 없으면, 사회도 없다.

다른 이로부터의 위로는 상황에 닿을지라도 마음에 닿기 쉽지 않다. 당신을 위한 진정한 위로는 오로지 내부로부터 울릴 때 가능하다. 당신을 어루만지는 위로는, 오로지 당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아픔의 시간에, 혹은 아픔을 잃어버릴 수 있는 시간에 연동하여.

작가 연소영의 작업은 당신의 아픔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반복적으로 덧칠되는 새빨갛고 새파란 물감은 작가의 세계에 던져진다. 작업의 수행은 아픔에 대 한 치유를 거부하는 듯 보인다. 혹은, 이러한 수행이 치유의 의미를 포함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당신의 슬픔에 의견을 가지고 있다.1 하지만, 작가는 의연치 않고 자신의 일을 지속한다.

작가 오희원은 아름다운 색채로 잡아 둔 시간 속에 감상자를 초대한다.

작가가 구상한 세계 앞에서 감상자는 네모난 캔버스 속에 빠져들 듯, 그 위를 흘러내릴 듯하다. 반짝이는 표면은 방황하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작가가 펼쳐둔 시간 속에 붙잡혀 물리적인 시간은 힘을 잃는다. 매 순간의 시간이 버거운 자들에게, 작가의 작업은 또다른 시간의 기준으로 자리한다.

각자의 시간은 자신만의 속도를 가진다. 이는 종종 평가받고 비난 당하기 마련이지만, 실상은 아무도 그 속도를 나무랄 수 없다. 스스로에게서 찾는 위로는 특정한 속도를 가진 시간을 보듬어, 편안하게 만든다.

큐레이터 박재은
1 메건 디바인, 슬픔의 위로
작품 에세이
연소영 작가의 작품은 명확한 형태를 묘사하지 않지만, 전달되는 감정은 어떠한 형체보다도 직접적이다. 정확한 색채의 표현과 더불어, 던져진 물감을 품은 캔버스 천은 축 늘어져 그 감정을 대변한다. 작품의 제목인 반흔조직은 상처가 나을 때 생기는 염증의 흔적을 뜻한다. 반흔조직 연작(連作)에 속하는 켈로이드(KALOID) 또한 상처자국에서 부풀어오르는 염증반응을 의미한다. 이렇듯 상처와 관련된 제목을 가진 작업들은, 염증의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작품속에 거대하게 담겨 감상자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상처가 남긴 흔적처럼, 작가의 작업은 남겨져 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고통의 시간은 함축적이다. 부풀어 오르는 상처는 작가의 작업 속에서 감상자에게 다가온다. 이러한 고통과 상처의 시간은 사실상 멈추어 있다. 상처입은 당시의 순간으로 계속해서 되돌아가 그 순간 속에 머무르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물러있는 순간은 계속해서 늘어나, 끝없는 암흑처럼 시간을 가린다. 작가가 남긴 작업은, 상처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며 되풀이된다. 돌아보는 시간 속에, 상처는 선명하게 놓여있다.

그러나 멈춰 있는 작업 속 담긴 시간은 치유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반복적인 붓질이 더해짐과 동시에 드러나는 유화의 탄력성은 상처부위에 메꿔지는 살처럼 드러난다. 더해가는 붓질은, 작가 스스로의 치유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구체성을 나타내지 않고 작가는 묵묵히 작업을 수행하며 감상자를 이끈다. 작업에 투사하여, 상처입은 이들의 흔적을 돌아보게끔 한다. 작가의 작품 속 뜨겁고 차가운 개인의 감정은 표출된다. 이러한 아픔은, 치유되는 과정에서의 극심한 고통이기도 하다.

상처의 고통과 치유의 고통 사이, 작가의 작업은 부유하여 상처입은 이들의 마음에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