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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봉예원

작가 봉예원은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가하는 거대한 폭력과 그 이면에 은폐된 작동 원리에 파고 든다. 작가가 피부로 느끼는 현 사회는 개인의 원형을 개조하고 지워버리는 것에 무감각하며, 사회의 통념에 따라 인위적으로 규격화된 체계에 맞춰 개인을 분류한다. 봉예원의 작업은 그 분류 결과물의 표피를 과감히 들추어내어 개별 인격체가 무자비하게 소비되는 폭력적 과정 및 은폐 방식을 시각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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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봉예원

작가 봉예원은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가하는 거대한 폭력과 그 이면에 은폐된 작동 원리에 파고 든다. 작가가 피부로 느끼는 현 사회는 개인의 원형을 개조하고 지워버리는 것에 무감각하며, 사회의 통념에 따라 인위적으로 규격화된 체계에 맞춰 개인을 분류한다. 봉예원의 작업은 그 분류 결과물의 표피를 과감히 들추어내어 개별 인격체가 무자비하게 소비되는 폭력적 과정 및 은폐 방식을 시각화 한다.
큐레토리얼 에세이
< 감각- 기억 -현실 >

현 21세기에는 절대자에 의한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표상으로써 진리를 나타내는 문제를 다루며, 작가는 매개자 위치에서 주체와 대상 간의 현상학적 · 공감각적 관계성을 구현해낸다. 이제 관람자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적극적으로 작품에 침투하여 제3의 해석의 장을 열게 된다.

관람자가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여 그것을 내면화할 수 있는 전시는 감각과 기억을 자극하는 전시이다. 주체가 오감으로 느끼고 축적해온 기억들이 전시를 감상하는 동안 계속해서 활성화되어 작품을 흡수하는 정도와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부정적인 기억을 상기시키는 작업을 기피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업만을 선호하는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역으로 억압과 폭력, 차별과 상실과 같은 비극적 체험을 표상한 작품은 관람자로 하여금 부정적 감정을 발산하는 장을 조성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익명 개개인의 미시적인 기억을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언어로 확장시킨다.

팬데믹 시대에 놓인 현대인들은 감각할 자유를 잃었다. 호흡기관을 가리지 않은 채 숨을 쉬는 것에 제약을 받고, 타인과 상호작용하기보다 거리 두기가 우선시 되며, 가고자 하는 장소에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 시공간을 자유로이 감각하는 사소한 행동조차 생명에 치명적 결과를 야기하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신체는 더욱더 감각하기를 갈망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감각-기억-현실’의 연결관계를 드러낸다. 개별 감각경험들이 모여 구성된 커다란 집합체가 기억이며, 기억의 체계들은 곧 삶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시대미술에서 ‘감각-기억-현실’의 구조가 구현되는 방식을 담아내고자 한다. 기획의 첫 단계는 삶의 하부에 위치한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과정에는 봉예원이 참여하여 현실을 감각하고 여러 경험들이 뭉쳐진 기억의 덩어리를 조직한 후,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삶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관철한다. 기존 물리적 공간을 벗어난 웹 전시장은 기획자와 작가, 관람자 모두에게 신체 유희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며, 화면 속 작품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체화되어 주체의 기억 한 켠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큐레이터 민다희
작품 에세이
봉예원은 직설적인 은유법을 사용하는 독특한 작업을 전개한다. 다소 모순적으로 들리는 이 단어는 모순으로 둔갑한 사회를 반증한다. 미디어라는 가상공간에 소속된 인간은 기록되고 감시되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에 놓이고 만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힌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의 시선은 분산되고 은폐된 진실과 지속적인 폭력에 둔감해진다. 봉예원의 두 영상작업 < 원래 >와 < 구조적 폭력의 세습 >은 이와 같이 사회에 고착화된 폭력적 사건들을 은유하여 직설적이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___는 비정상적이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___는 ___하는 경향이 있다.”

이 빈칸들을 어떻게 메울 것이며 그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작가는 질문한다. < 원래 >(2019)에서 다채로운 색을 띠던 조형물은 실체가 분간되지 않는 대상에 의해 무자비하게 깎여 내려가며, 하나의 색을 제외한 모든 색들이 폭력적으로 제거된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각기 다른 순서 하에 제거되지만 결과는 모두 같다. ‘원래’에 부합하지 않아 소거된 이탈자가 되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회는 그들만의 암묵적 통념과 금기를 가지고 있다. 이때 암묵적이라는 말은 표준을 벗어났을 때 사회적 제재와 폭력이 가해질 잠재적 가능성이 내포되어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위협은 삶의 도처에 어디에나 배회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보통’과 같은 일상 수식어 앞에서 개인은, 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스스로를 맞춰야 하는 현실에 봉착한다. “원래 ___는 ___하다.” 봉예원은 이 한 문장으로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 현상을 조명하여 ‘원래’라고 불리는 것들이 이와 같은 폭력을 거쳐 은폐된 결과물은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또 다른 영상작업 < 구조적 폭력의 세습 >(2019)은 보다 구체적인 폭력 과정을 묘사한다. 봉예원은 한 사회적 소수자가 상대적으로 더 차별 받는 다른 소수자를 마주했을 때, 자신이 기득권으로부터 당해온 혐오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을 목격했고, 해당 경험을 영상으로 시각화했다. 바위가 계란을, 다시 계란이 메추리알을 내려치는 단순한 시퀀스는 5분 남짓의 시간 동안 반복된다. 바위에게 당한 것을 되갚아주기라도 하듯 계란은 메추리알을 향해 돌진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셋 모두 금이 간 상태로 남는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잔인한 갈등 구조는 사회의 권력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굳어진 수직구도 하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비인격적 폭력은 약자의 의식에 각인되어 불신과 증오의 감정을 싹트게 하고, 재빨리 감정을 전이시킬 다른 대상을 찾게 만든다.

봉예원은 반복을 통한 각인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가가 가하는 반복적인 충격은 주체가 사회와의 힘의 균형에서 무너지거나, 지속적인 폭력에 무뎌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감각하고 기억하게끔 유도한다. 봉예원의 작업범주는 현실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그들이 맞닥뜨리는 사소하고 무거운 일들이 그 어떤 거름망도 거치지 않은 채 개인에게 투사되는 일을 경계해야 함을 역설한다.

큐레이터 민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