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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조형윤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뒤, 현재 동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수학 중이다. 이론과 비평, 그리고 작업 활동을 병행하며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주된 관심은 인형극과 스튜디오형 어린이 프로그램, 개그, 디지털 이미지 수집이다. 현재 그러한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제 11회 홍익 미술전》에 설치작업 <Cry Booth>와 <Je te Veux>을 전시, 2018년 예술 대학 연합 전시 《기질전》에 사진 작업 <신정동 삐에로 클럽>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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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조형윤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뒤, 현재 동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수학 중이다. 이론과 비평, 그리고 작업 활동을 병행하며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주된 관심은 인형극과 스튜디오형 어린이 프로그램, 개그, 디지털 이미지 수집이다. 현재 그러한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제 11회 홍익 미술전》에 설치작업 <Cry Booth>와 <Je te Veux>을 전시, 2018년 예술 대학 연합 전시 《기질전》에 사진 작업 <신정동 삐에로 클럽>을 전시했다.
큐레토리얼 에세이
우리의 환대*

  요샌 늘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까, 싫은 사람이 싫은 소릴 하면 몰래 메-롱! 할 때가 있다. 몇달 전부터 옆집 사람은 오후 네 시가 되면 아파트가 떠나가라 'let it go'를 열창한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소리치는 남자는 텅 빈 지하철 승강장에서 외로워 보인다. 예전이라면 그를 둘러싼 더 많은 관객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아래 일사불란하게 떨어져 있는 우리 모두, 그렇다고 쳐야 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나는 정다운 친구와 함께하는 티타임을 상상한다.
  삐에로가 대문을 열어주고 외투를 받아준다. 먼저 도착한, 삐에로의 또 다른 친구인 삐에로 인형과 서로 인사한다. 우리는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연두색 잔에 홍차를 따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오르골 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쉬폰 드레스를 골라주고, 한껏 예쁜 차림으로 오후엔 철쭉이 핀 공원을 산책한다. 저녁엔 친구들 손에 이끌려 카니발의 회전관람차를 타고, 알록달록한 천막 아래서 써커스를 구경하고, 장난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손엔 고무총 게임 경품으로 딴 토끼 인형을 들고.
  모두가 떨어져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환대를 상상한다.
  조형윤의 작품은 친구들을 초대한다. 마치 예쁜 편지지에 또박또박 적힌 생일 초대장처럼. 초대장의 약도에 궁전 모양으로 그려진 친구 집처럼. 생일 파티는 본디 전원이 다 초대받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 받은 친구들만의 즐거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사랑해!>에서 카니발 천막에 초대받은 주인공처럼, <신정동 삐에로 클럽>에서 삐에로 분장을 한 친구와 새벽 밤거리를 걷는 것처럼. 그렇다. 귀한 자리에 모두가 초대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웹 전시의 좋은 점은 모두가 초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한계나 여러 심란한 상황에 구애 받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편한 장소 어디에서든 초대에 흔쾌히 응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각자의 디바이스 너머로, 실제보다 조그매진 작품을 바라보겠지만, 작은 보물상자를 살짝 열어본다는 기분으로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1923 년에 개봉한 버스터 키튼의 코미디 영화 제목.
(분노에 찬 표정으로 총을 겨누며) "넌 우리의 환대를 결코 잊지 못 할거다!"

  큐레이터 백예빈
작품 에세이
  내가 나일 확률

나와 나 사이에 흐르는 의심의 강이 있고
건너갈 수 있는 날과
건너갈 수 없는 날이 있었다

박세미의 시집 『 내가 나일 확률 』 중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서 절벽 위를 올려다 보았을 때, 그곳에는 나를 밀어버린 내가 있다고 한다면. 꿈에서 번쩍 깨 침대에 앉아 얼굴을 쓸어 내리는데, 문지방엔 나를 바라보는 내가 서 있다면. 나는 종종 여러겹의 꿈에서 차례로 깨어나며 일평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상상한다. 조형윤의 <신정동 삐에로 클럽>에는 꿈 속에서 어쩌다 잘못 마주친 내가 있다. 방금 마주친 ‘나’는 왠지 삐에로 분장을 하고 있고, 다른 두 삐에로 친구들과 신정동의 새벽을 누비려 하고 있다. 나는 삐에로인 또 다른 ‘나’가 벌이는 파티에 동참한다.
  작가는 “삐에로 분장을 하면 (선한 말이든 악한 말이든)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라 말한다. 삐에로 분장을 한 ‘나’는 삶의 온갖 고단함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현실의 나와는 사뭇 다르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삐에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삐에로는 날카로운 재치를 숭배하고 요란한 소동을 갈망하며, 진지한 슬픔은 뭉쳐 길바닥에 버린다. 그게 설사 왕의 슬픔일지라도.
  가면을 쓰는 행위가 이미 만들어둔 벽으로 내 모습을 차단하는 것이라면, 분장扮裝함은 오히려 내 모습 위에 다른 모습을 덧입혀 새로이 드러내는 방식이다. 분장은 자신의 모습을 곱게 꾸미는 화장과는 또 다른데, 분장에는 현실의 ‘나’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인물이 되겠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삐에로 클럽의 일원들은 삐에로 옷과 장신구를 두르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늦은 밤 전봇대 아래 널브러진 장난감처럼, 꿈 밖에서도 돌아다니는 악마처럼 말이다.

  "여기가 아이들의 보물 창고야. 난 애들에게 줄 장난감을 마련할 약간의 예산을 갖고 있단다. 착한 아이가 날 찾아오면, 나에 대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이곳으로 데려오지. 자, 골라들 보세요."

  샤를 보들레르, 「장난감의 모랄」중

  한편 <사랑해!>의 주인공은 화창한 날씨를 맞아 사랑을 고백하러 떠난다. 그에게는 여느 주인공이 그러하듯 험난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기차표를 주지 않겠다며 주인공을 놀려대는 삐에로 인형과, 흰 천 위를 가르는 장난감 기차, 멋진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을 초대한 다른 인형들의 갤갤거리는 웃음 소리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마치 근사한 집에 초대 받아 그 집의 어린 꼬마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그 꼬마애가 장난감들로 만드는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작가는 실제로 귀한 장난감과 인형을 수집한다고 한다. 해외 여행을 할 때 벼룩시장에서, 빈티지 의상실에서, 파티 용품점에서, 심지어는 누가 버린 소품도 주워 모은다고 한다. 작가의 수집광인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는 장난감을 수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를 한 집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일 거라고 어렴풋이 추측한다. 알록달록한 담요를 쳐놓고 배를 깔고 엎드려 인형 놀이를 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를 초대할 아늑한 방이 있어야 한다. 아무도 자기의 분신인 인형이 부서지기를, 다치기를, 때묻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독 반짝거리고 하늘거리고 약한 옷을 입은 인형들이 많은 까닭은, 재워줄 꼬마가 있어서가 아닐까.
  주인공은 여행자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가, 친구의 방에서 쉬폰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하지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힘들게 열쇠로 방문을 열고 나간 바깥 세상은 낭떠러지 아래 넓은 풀밭이다. 발가벗고 산산 조각난 주인공은 기어서 기어서, 결국 "사랑해!" 라 외친다. 고백과 함께 정다운 웃음소리도 사그라들었다. 이제는 영영 밖이다.

  큐레이터 백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