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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윤태준

윤태준은 1987년생으로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각 이미지를 생산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있다. 신체 기관이 인지하는 감각을 물성을 가진 특정한 사물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한다. 동시에 사진 매체가 사물을 복제하는 속성을 이용해 물성과 감각을 시각적 표현으로 제시한다. 현실을 표방한 사진의 신기루와 현실 세계의 명징함을 결부시켜 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희준

이희준은 1988년생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삶 주변을 둘러싼 풍경 곳곳에 녹아든 디자인적 미감에 관심을 둔다. 주변 환경의 비례와 균형, 색채를 민감하게 살피고 그것으로부터 회화의 소재를 찾는다. 수집한 풍경을 확대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수직, 수평의 색면으로 구성한 추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외부의 풍경을 기호화하고 캔버스에 재구축하는 작업이다. 이미지를 회화 기법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붓질을 통해 다층의 레이어를 생성하고 새로운 질감을 이끌어낸다. 도시 풍경을 살피며 발견한 시공간의 층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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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윤태준

윤태준은 1987년생으로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각 이미지를 생산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있다. 신체 기관이 인지하는 감각을 물성을 가진 특정한 사물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한다. 동시에 사진 매체가 사물을 복제하는 속성을 이용해 물성과 감각을 시각적 표현으로 제시한다. 현실을 표방한 사진의 신기루와 현실 세계의 명징함을 결부시켜 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희준

이희준은 1988년생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삶 주변을 둘러싼 풍경 곳곳에 녹아든 디자인적 미감에 관심을 둔다. 주변 환경의 비례와 균형, 색채를 민감하게 살피고 그것으로부터 회화의 소재를 찾는다. 수집한 풍경을 확대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수직, 수평의 색면으로 구성한 추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외부의 풍경을 기호화하고 캔버스에 재구축하는 작업이다. 이미지를 회화 기법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붓질을 통해 다층의 레이어를 생성하고 새로운 질감을 이끌어낸다. 도시 풍경을 살피며 발견한 시공간의 층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의도다.
큐레토리얼 에세이
  The Crossing Point

  오늘날 미술 전시에 관한 영역은 온라인 환경에 자연스레 흡수된 다른 대중 크리에이티브 분야들과는 다르게 현대인의 성격, 관점을 쉽사리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환경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전시 환경으로서의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 대한 연구는 협소하다. 즉, 전시 내용과 이를 지각, 사유할 수 있는 일반 대중의 눈높이가 여전히 수직적이다.
관람객의 신체에 주목한 이번 《clickscrollzoom.com》의 “The Crossing Point”는 이러한 문제 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전시 내용을 받아들이는 관람객의 ‘신체’와 ‘정신’, 뗄레야 뗄 수 없는 두 지점을 연속적으로 고려하는 전시는 온라인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도면-뷰 포인트-설명”을 바라보는 일련의 시선은 관람객이 실제 전시공간 안에 있다는 감정과 더불어, 보다 전시에 주목할 수 있는 유연한 의지 또한 포함된다. 공간에 전시된 작품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뷰포인트’는 언뜻 관람객의 시점을 제한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관람객이 놓칠 수 있는 작품에의 감각 및 사유 지점을 눈높이에 맞게 제시하는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구현 형식은 두 작가의 작품이 지니는 대비와 교차의 속성을 관객이 보다 직관적으로 감각,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고안되었다.
  윤태준, 이희준 작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물성에 대한 담론 가능성을 내재하며, 우리로 하여금 실재를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전통적으로 회화 매체와 사진 매체의 서로 다른 특징으로 받아들였던 가상성과 현실성은, 그들 작품에의 독해가능성과 그들 이미지가 보유하고 있는 실천(행위)으로써 그 성격이 맞닿는다. 또한 두 작업을 내감하는 주체는 수용력과 개방성을 통해, 우리 신체를 그 자체로 현상과 실재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마주하게 된다. 다른 영역에서 각자가 추구하던 지각-인식, 신체-정신적 활동은, 이미지가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는 물성을 기점으로 서로를 비추고, 북돋는다. 우리의 지각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의 작업을 현상 그 너머로 경험하게 하는가? 또한 우리의 상상은 개별적인 두 작품을 어떻게 연속적인 사유로 이끄는가? 이에 대한 질문을 고스란히 담은 “The Crossing Point” 전에서 두 작품은 이미 강렬하게 혼합되고 있으며, 새롭게 정초되고 있다.

큐레이터 남기범, 류혜선, 전혜림
작품 에세이
  윤태준 작품 에세이

  사진이 발명된 1839년 이래로 모든 것이 사진에 담겼거나 혹은 그렇게 여겨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카메라가 기록해 놓은 것 덕분에 세상이나 대상을 더욱 세말하게 관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해라는 것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시작된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그 사물에는 다른 어떤 것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태준 작가는 사물의 질료적 성질을 부각하면서, 우리가 그 너머의 무엇을 인지하도록 이끈다.
  윤태준의 ⟨낮고, 빠르게 쏘기, Low, Quickdraw(2019)⟩연작은 3차원의 피사체를 세부 정보를 제거하여 사진의 평면 위에 올려 놓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물질들은 세밀하게 드러나는 형태와 질감 이외에는 다른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찍힌 것인지 알 수 없으며 가상현실로 보여지는 공간에 놓여있기도 하다. 윤태준은 이러한 사실적이지 않은 요소를 개입시켜 그것의 역사마저 제거하고 대상을 현실과 가상 사이에 위치시킨다. 이로써, 사물은 스스로 무언가를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얇은 레이어인 사진에 존재하게 된다.
  우리와 사물 사이에 끼어드는 모든 것이 제거되고 빈 자리에는 사물 자신의 단단한 물성이 꽉 채워져 있다. 물성은 특정한 감각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무게, 촉감, 부피, 형태와 같이 감관에 주어진 다양성의 총합체이다. 그리하여 윤태준은 시각적인 것으로 물성을 축약해버리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사진의 표면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는 사물을 우리의 신체적 부위로 밀어붙인다. 그의 사진 작업에서 사라진 대상의 이야기와 감각들은 우리 정신 안에서 상관관계를 가지게 되고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덕분에 사진은 현실 복제라는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난다. 윤태준의 사진은 눈 앞에 현존하는 구체적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사물의 고유한 물성을 시각적으로 압축하여 재현하고 그것에 대한 추론, 사색, 환상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연다. 결국, 그는 우리가 사진을 통해 대상이나 현상을 지각-인지하는 범위를 넓혀주고 우리를 실재에 더 가깝게 데려다 놓는다.

큐레이터 남기범, 류혜선, 전혜림   
이희준 작품 에세이

<The Tourist>(2020) 연작의 개별 작품들은 그 전체와 일부 조각들 사이 경계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며 다가온다.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저화질의 사진들을 A4용지에 인쇄하여 캔버스에 바르고,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한 아크릴 물감의 기하적 형태들을 밑칠된 사진 위에 배치한다. 처음 그의 작품을 맞이한 관객들은 불투명하면서도 대담하게 칠해진, 강한 물성의 기하도형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내 관객의 시선은 그 도형을 감싸듯 모호하게 일보후퇴한 채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있는, 사진 속 대상들로 이동한다. 이렇게 관객들이 작품을 맞이하며 유동하게 되는 일련의 지각-인식은 작가가 여행에서 포착했던 장면을 짐작하려는 관객들의 의지와 발맞추어 수차례 반복된다. 우리의 의지와 지각-인식이 그려낸 발자취는 부분과 전체를 오가며 하나의 그림을 우리 내부에서 마주하게 한다. 즉 작품이 감각정보로서 전달하고 있는 현상의 레이어들과 이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작가의 경험은, 관객의 고유한 주관 내에서 혼합되어 그 너머의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3차원적 입체성을 획득한다.
  한편 이희준 작가는 정방형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회화의 평면성을 전혀 부정하지 않은 채로 작업을 수행했다. 그의 작품들이 여러 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해보자. 가장 상단에서 존재감 있고 무겁게 내려앉은 아크릴 물감의 레이어는 작가의 기억 속 장면들과 그 심상이 물질적 형상으로 응축된 결과물이다. 그 레이어는 상당히 독보적인 자세로 화면 전체를 선점하는 듯 보이며 관객들이 보고자 하는 바를 의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희준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을 포착한다. 최상단의 레이어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가리고 있던 것인가? 우리는 왜 두꺼운 물감의 물성이 양팔을 벌리며 걸어온 인사에 눈살을 찌푸려가며 애써 무시하고, 아주 파편적인 정보만을 담고 있는 저화질의 사진에서 가려진 부분을 유추하려 노력했는가?
  회화와 사진을 오고 가며 그가 캔버스에 구현하려 시도했던 ‘실재’는 결국 하나로 병합된 레이어 속에 담겨 다가오는 것이지, 부분적으로 파악되는 정보들의 조합이 아니다. 파편적 사진의 두께는 매우 얇다. 그 얇은 레이어는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못한다. 두꺼운 물감의 물성이 걸어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는 오감이 열리는 기분으로 그것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가 경험한 실재가 관객에게 닿기까지, 겹겹이 쌓아놓은 서로 다른 속성의 레이어들은 결국 다같이 손을 잡고 우리에게 열렸다. 존재는 규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하이데거의 실존 개념을 떠올릴 때, 비로소 이희준 회화의 진가가 발견된다. 그가 캔버스 위에 구축한 물성은 우리의 감각과 정신을 이어주는 연결체이자, 경험의 확장성과 새로운 조형적 소통 방식으로서 드러난다. 그가 제시한 ‘현실의 대상-사진-추상회화’라는 새로운 질서는 자신이 구현하고자 했던 실재를 관객들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작가-관객의 소통 영역과 인식의 범위를 환기한다.

큐레이터 남기범, 류혜선, 전혜림